[권순철 검사가 본 유럽 법조계] 스위스의 변호사 양성 시스템
권순철 검사(주 제네바 법무협력관)
2011-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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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총 변호사수는 2010년 현재 6500여명으로서 변호사 1명당 인구수는 1100명 수준이다. 2009년 현재 변호사 1명당 인구수가 한국의 경우 5100명, 독일은 530명, 미국은 260명 수준으로 알려져 있으니, 한국만은 못하지만, 스위스도 법률가의 직업적 가치는 상당하다고 보여진다. 영세중립국으로 안정된 사회 분위기와 높은 준법의식으로 인해 분쟁이 많지 않아 과연 사회적으로 법률가의 수가 적정한지 쉽게 판단은 되지 않으나, 작년에 동물변호사를 강제하자는 법안이 국민투표에 붙여질 정도의 이색적인 문화에서 알 수 있듯이 스위스 법률가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양한 영역에서 일하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법률가가 어떻게 양성되고 선발되고 있을까? 스위스는 인구 780만명에 불과한 국가이지만, 서로 다른 26개의 주로 이루어진 연방국가여서 연방 차원의 변호사 시험은 없고 주마다 고유한 변호사 시험제도를 갖고 있다. 다만, 어느 한 주에서라도 시험을 통과해서 변호사가 되면, 다른 주에서도 업무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어 주 사이에 변호사 장벽은 법률상 존재하지 않는다. 주마다 대략 공통된 내용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일정기간 실무교육을 마치면 변호사 시험의 응시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과대학 졸업만 한 사람과 시험합격까지 이른 사람은 구별되며 전자는 ‘lawyer’라고만 하지만, 후자는 ‘avocat’ 혹은 ‘attorney at law’라고 부른다.
스위스에서는 변호사가 되려면 반드시 법과대학을 졸업해야 한다. 스위스에는 9개의 법과대학이 있으며 모두 주립대학(예, 취리히대학교 법대, 제네바대학교 법대 등)이고 사립 법과대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3년의 교육과정 후 학사학위를 받게 되는데, 통상은 그후 2년의 석사과정을 모두 마치고 실무수습에 들어가게 된다. 제네바 법과대학의 경우 대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은 헌법, 형법, 계약법, 재산법 등이며 석사과정은 국제법과정, 공익법과정, 민형사법과정 등의 분야로 나누어 교육을 받게 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학비가 1년에 1000프랑(약 130만원)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3배에 달하는 물가수준을 감안하면 스위스 법과대학의 1년 학비는 우리 국립대학의 10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은 “이렇게 싼 학비로 공부하는데 사회적으로 대우받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누구나 법과대학에 들어가길 원하지 않을까”하는 것이 될 것이다. 물론 공부 잘하는 고등학생들은 법과대학에 들어가길 원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5년의 대학과정과 2년의 실무과정 등 총 7년이라는 수련과정이 장기이기도 하지만, 단계 별로 올라가기가 결코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제네바 법과대학의 경우, 3년동안 총 180학점을 이수해야 하며, 평점 6점중 4점 이상을 획득하지 못하면 유급되게 되고 3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이 기회를 놓치게 되면 스위스에서 법조인이 되는 것은 사실상 단념해야 한다. 변호사 시험도 실무수습을 마친후 5년동안 3회만 응시가능하다. 실무수습도 결코 간단하지 않다. 연수 자체에 성적을 매기지는 않지만, 변호사시험위원회에서 정한 단체들의 회의에 일정시간 참석해야 하고, 공판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해야 한다. 그 내용은 변호사 선발과정에 반영된다.
그럼, 변호사 시험 합격률은 얼마나 될까? 제네바 주의 경우, 한해에 5월과 11월 두 번 시험을 치르는데 1회에 100여명이 시험에 응시하게 되고, 그중 약 50%의 응시자들이 합격한다. 작년 11월에는 합격률이 낮아 103명중 36명만이 합격했고, 5월에는 102명이 응시하여 69명이 합격했다. 제네바주 변호사시험위원회의 통계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최종 불합격자가 6%수준이라고 한다. 즉, 변호사시험 최종 응시기간(5년, 3회)까지 도전했으나 성공하지 못해 더 이상 변호사 시험을 응시할 수 없어 꿈을 접어야 하는 학생의 비율이 6% 수준이라는 것이다. 장기간의 교육과 시험에 지쳐서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니, 사실상 그 비율은 10%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분명히 어느 사회나 변호사가 갖는 지위와 명예는 상당하다. 스위스 역시 변호사는 높은 수준의 보수를 받고 있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당연히 법과대학을 진학 대상중 하나로 꼽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와 교육 기간은 유사하나 학비는 상대적으로 덜 든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눈길을 끄는 점은 한 사람의 우수한 법률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학교와 주정부 등 정책당국이 꼼꼼한 시스템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은 엄격한 학사관리를 통해서 저렴한 비용으로 공부하는 학생에게 그만큼의 책임을 부여하고 있고, 주정부는 감독 제도를 통해 실무수습 기간동안 학생의 태도와 성취도를 변호사 선발과정에서 그대로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결코 대학에서는 온정주의적으로 학점을 인플레하지 않으며, 주정부는 높은 합격률을 유지하여 다른 지역의 인재를 모으려는 정책을 결코 취하지 않는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법률문화의 질적 저하를 가져오고 사회의 안정을 해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법률이나 의료서비스는 사람이 공급하는 인적 서비스로서 다른 재화와 용역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함은 이곳 스위스에서도 쉽게 확인되고 있다.